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폴란드 대통령 연설문 보기 인물탐구 - 알렉산데르 크바스니예프스키
폴란드 대통령 특강 내용 폴란드 대통령 방문 이모저모


총장님, 신사 숙녀 여러분,

내빈 여러분, 계명대 교수님과 학생 여러분, 대구시 당국 대표, 실업계 대표 여러분, 이렇게 만나 뵙게 되어 매우 기쁩니다. 오늘 이 강연회에 참석하신 여러분들의 의견이 한국의 여론 형성에 커다란 영향력을 행사하고, 여러분들 모두가 폴란드에 대해 호의적이고 폴란드가 이룩한 발전에 관심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저는 알고 있습니다. 이 때문에 저에게 이강연회는 특별한 의미를 갖는 것입니다. 저를 초청해 주신 신일희 총장님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신 총장님께서는 한 폴 협회의 회장을 맡고 계시며 폴란드를 아껴주시는 친구이자 한 폴 우호 협력 관계를 주도하시는 분이라는 점에 저의 온정과 특별한 감사를 드리는 바입니다.오늘 이 자리에 참석하신 안드레이 마이코프스키씨는 한 폴 협회의 폴란드측 회장이시며 폴란드 대통령의 외무 담당관을 맡고 계십니다.

오늘 이 강연회에 참석하시고, 한 폴 관계를 더욱더 가깝게 증진시키는 여러분들께 따뜻한인사와 애정어린 말씀을 전해드립니다.

오늘 한국은 멋진 축구 경기의 개최지로서, 흥미진진한 스포츠 장관의 공동 개최국으로서 전 세계의 주목을 받고 있습니다. 그러나 폴란드 국민들은 월드컵 기간뿐만 아니라 일상 생활 속에서도 한 폴 양국이 지닌 많은 유대 관계 - 특히 경제적 유대 관계 - 때문에 한국에 관심을 기울입니다. 아시아의 여러 나라들 가운데서 한국은 폴란드와 가장 가까운 동반자 중 하나입니다. 오늘 이 강연회와 이 곳에 많이 모이신 여러분들은 그러한 관계를 확인하는 데 큰 도움이 될 것입니다.

신사 숙녀 여러분,

폴란드의 현대 모습을 간단하게 소개해 드리고 싶습니다. 그러나 지난 12년간 폴란드가 겪은 변화를 설명하기 위해서는 더 큰 그림 속에서 폴란드의 역사와 유럽에서 폴란드의 위치를 간략하게나마 말씀드릴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1천여년에 걸친 긴 역사에서 폴란드는 승리의 순간들뿐만 아니라 비극적 퇴락의 순간들도 경험했습니다. 16·17세기에 폴란드는 유럽의 초강대국 중 하나였습니다. 그러나 18세기 말, 주변국들이 추구한 내부 제도와 공격적 정책의 결여로 인해 폴란드는 120여 년간 독립을 상실하게 되었습니다. 독립국가로서 폴란드는 유럽의 지도에서 사라지게 되었으며 폴란드의 영토는 팽창주의 노선을 따르는 주변 3개국에 의해 분할 점령되었습니다.

그러나 역사를 기억하고, 폴란드의 문화와 언어를 연마하고, 주권과 독립과 민주적 자유 사상에 대한 애착심을 키워감으로써 폴란드는 국가로 살아남았습니다. 이 모든 것이 1918년 폴란드가 독립국가로서 재생할 수 있게 했습니다. 그러나 단지 두 세대의 폴란드인들만이 자유 국가에 살면서 그들의 날개를 펼 수 있었습니다. 1939년 폴란드는 제2차 세계 대전의 첫 희생국으로 나치독일의 공격을 받았고, 그 후 소련군이 폴란드 영토를 침략했습니다.

2차 세계 대전의 종말은 폴란드에게 또 다른 쓰라린 경험이 되었습니다. 얄타 협정의 강요에 의해서 폴란드는 강제적으로 소련의 영향권 아래 놓이게 되었으며, '철의 장막' 동편에서 공산체제를 강요받았습니다. 그러나 부분적 주권과 독재 통치의 기간이었던 1945년에서1989년까지 폴란드는 다소의 성과를 거두었습니다.

두 가지만 언급하자면, 농업 국가에서 산업 국가로의 전환과 공교육 체계에서의 엄청난 발전을들 수 있겠습니다. 그 후 폴란드는 외부 세계에 점점 더 문호를 개방하게 되었고 국가정책도 점차 자유주의적으로 선회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폴란드 국민들은 자유와 민주주의를 끊임없이 갈망했으며, 저항 정신과 서방 세계와의 역사적인 문화적 친밀감에 대한 인식이 지속되었던 것입니다. 누군가가 언급했듯이 폴란드는 동구권에서 가장 맹렬히 끓어오르는 도가니였던 셈입니다. 1980년과 자유노조연대 운동은 이러한 상황을 극명하게 보여주었습니다. 당시에는 감지하는 이가 몇 없었지만, 폴란드와 유럽, 그리고 전 세계는 중요한변화의 시기에 진입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20세기 말 경, 폴란드는 위대한 가치를 지닌 경험을 전세계에 전파했습니다. 변화를 가져오는 데 열중하여 폴란드는 평화로운 대화의 길을 택했으며, 우리를 분리시키는 것이 아니라 우리를결속시키는 길을 선택했습니다. 폴란드의 변혁은 협상과 역사적인 타협으로 시작되었습니다. 1989년 당시 집권 당국 대표들과 민주 반대 세력 대표들이 원탁에 마주 앉았습니다. 자유노조 연대운동이 시작된 지 9년 후, 그리고 계엄령이 선포된 지 8년 후, 폴란드를 황폐화시키는 적대감과 절망감을 극복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은 대화와 불굴의 노력으로 신뢰를 구축하는 길뿐이라는 인식이 지각 있고 책임감 있는 국민들 사이에서 점점 자라나기 시작했습니다. 협상을 통한 합의는 폴란드 전역에 영향을 미치는 정치적 변혁을 위한토대를 세웠습니다. 이것은 모범적인 패러다임이 되어 중구와 동구 사회에 민주주의와 자유시장 경제체제를 향하여 유혈 없이 나아갈 수 있는 방법을 제시했습니다. 유럽은 엄청난변화를 경험했고 공산체제는 와해되었으며 냉전 체제하의 분할은 이제 역사 속으로 사라졌습니다.

1989년의 메시지는 폴란드의 정치에 공명하고 있으며, 분열보다는 합의를 나라의 우선 과제로 생각하는 것이 우리 폴란드의 트레이드 마크가 되었습니다. 폴란드의 외교 정책의 실행 분야가그 좋은 예가 되겠습니다. 주권을 되찾은 후, 폴란드는 주변 국가들에게 언제나 화해와 협력의 손길을 내밀었습니다. 쓰라린 과거의 유산에도 불구하고 유럽의 우리 지역은 수많은 전쟁과 갈등으로 인해 분열되었습니다. 주변 국가들과의 선린 관계는 폴란드의 국가이성을 형성하는 것임을 분명히 해왔습니다. 어떤 중소정당도 이러한 정책을 문제삼은적은 없었습니다. 1989년 이래로 폴란드의 정권은 여러 차례 바뀌었지만 폴란드의 외교 정책만큼은 언제나 일관성을 유지해 왔습니다. 폴란드는 안정을 증진하고 불확실성을 감소시키는 행위자이고, 이 지역에서 인정받는 협력의 활력소입니다.

과거에는 대륙의 한 중간에서 독일과 러시아라는 초강대국 사이에 마치 두 개의 맷돌 사이에 끼어있는 우리의 위치는 폴란드를 위험에 빠뜨리는 근원이 되었습니다. 오늘날 폴란드는 이러한 지정학적 운명을 영속적인 성공의 기회로 변화시켰습니다. 다른 나라와 협력하기를 열망하는 개방적인 국가이자 정치적으로 안정된 폴란드는 유럽의 질서 유지에 중요한구성 요소입니다. 화해와 미래에 대한 조화로운 비전에 기초한 독일과 폴란드의 관계는 훌륭한 모범 사례가 되었습니다. 폴란드는 러시아와도 개방적인 대화와 더 넓은 공조의 길로들어섰습니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의 최근 방문은 이 점을 입증해주며 폴란드와 러시아 관계를 재활성화하는 훌륭한 계기가 되었습니다. 우크라이나와도 신뢰와 전략적동반관계를 발전시키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여 왔습니다. 동방과 서방, 남방과 북방에 폴란드의 우방국과 동반국이 있습니다.

폴란드는 또한 유럽의 안보 체계와 통합 과정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폴란드는NATO 회원국이 된지 3년이 넘었습니다. 1999년 NATO가 동맹 회원국을 확대한 조치는 과거 얄타회담 결과 생겨난 분열의 철폐를 의미하는 것이었습니다. 폴란드는 NATO에 적극적으로책임감을 가지고 참가함으로써 서구와 동구간의 가교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이는 1999년 NATO의 조치가 유럽과 여타 국가의 안보와 안정을 강화하는 현명한 결정임을 입증하는 것입니다. 금년 말경 중구와 동구의 여러 나라들이 새로이 NATO에 가입하게 될 것입니다. 최근의 로마조약은 NATO와 러시아 사이에 대화와 긴밀한 협조관계가 동시에 진전되고 있음을보여줍니다. 동부 유럽에 위치한 NATO 가입국으로서 폴란드는 이러한 진전을 긍정적으로 바라보고 있으며, NATO가 더욱 더 확장되기를 희망하는 바입니다.

폴란드는 현재 유럽연합 가입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이는 폴란드에게 큰 도전이자 기회입니다.저희의 잠재력과 지리적 위치를 고려해 보면 앞으로 폴란드가 통합된 유럽에서 중요한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EU 회원국이 되기 위해서 폴란드는 필요한 개혁을추진하고 폴란드 경제의 경쟁력을 높여야 합니다. 우리 폴란드는 성공을 기대합니다. 폴란드는 베이스에 거의 도달했습니다. 2004년 폴란드가 유럽연합에 가입하게 되리라고 저는 희망합니다.

신사 숙녀 여러분,

합의에 의한 정치와 대화는 외교 분야에서만 우리의 행위를 주관하는 것이 아닙니다. 국내정책 가운데서도 일부 현안들은 전반적인 지지를 받고 있으며 정치적 타협의 대상이 되지 않습니다. 1997년 폴란드는 새 헌법을 제정하여 임시 헌법안 시기에 종지부를 찍었습니다.이 헌법은 험난한 절충과정을 거쳐 탄생했지만 폴란드 사회가 필요로 하는 현대적인 해결책을 제시합니다. 폴란드 헌법 재판소는 국가 법률의 합헌성 여부를 다루고, 그 결정은 구속력이 있고 최종적인 것입니다. 폴란드는 또한 행정 재판소라는 잘 발달된 사법 제도를 갖추고 있으며, 행정 재판소는 국가 행정 기구들이 내린 여러 결정 사항들을 감독합니다.

폴란드 국민들은 자신의 권리를 어느 때보다도 잘 인식하고 있으며 그들이 자신의 운명의 주인이라는 의식이 높아지고 있습니다. 어느 때보다도 굳건히 자리잡은 자치제도가 이를 뒷받침하고 있습니다. 폴란드는 또한 자유로운 공공의 장을 재건하는 데 성공했습니다. 외부 개입에서 자유로운 대중 매체와 언론의 자유는 적극적인 사회참여에 대한 신뢰를 회복시켰습니다.

1989년 이래로 폴란드 경제는 많은 이들의 경의를 받을 만한 고통스러운 변화를 치렀습니다. 과감한 개혁을 통해 급등하는 인플레를 낮추고 고효율과 경쟁력 강화를 유발하는 장치를 도입할 수 있었습니다. 민영화 계획이 착수되었습니다. 현재 GDP의 70%가 민간 부문에서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또 많은 외자를 유치했습니다. 지금까지 미화 500억 달러 이상의외자가 유입되어폴란드는 중구 및 동구에서 가장 많은 외자를 유치한 나라가 되었습니다. 폴란드의 일상의 모습은 변하고 있으며 생활의 일반적인 여건은 완전히 새로운 차원으로 뛰어올랐습니다. 폴란드인들은 다른 어느 때보다 안락하고 편안한 삶을 누리고 있습니다. 이는 무엇보다도 국민 수명이 매년 길어지고 있다는 통계 자료에서 잘 알 수 있습니다.

물론 개혁과 변화가 가져온 혜택이 모든 사람에게 공평하게 돌아간 것은 아닙니다. 우리는적지 않은 실수를 했습니다. 약동하는 계발 지대 옆으로 빈곤과 실업의 섬들이 생겨났습니다. 실업률은 현재 17%라는 우려할 만한 수준까지 올라가서 심각한 사회 문제가 되고 있습니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여러 조처들을 취하고 있으나 폴란드의 현실은 아마 향후 몇 년간 크게 변하지 않을 것입니다.

일반적으로 말하자면 폴란드의 경제적 변화의 성공은 논쟁의 여지가 없으며 변화는 이제 거스를 수 없는 것이 되었습니다. 폴란드는 앞으로 나아갈 수밖에 없으며 또 나아가고자 합니다. 폴란드가 이룩한 개방 사회는 경제, 사회, 정치 발전의 과정이 끝없는 과정이라는것을 명백히 이해합니다. 개방 사회는 민주주의가 최선의 의사 결정을 내리도록 도와주는 과정이긴 하지만 국민들이 스스로 의사 결정을 해야하는 부담을 덜어주는 과정은 아님을 너무나 잘 인식하고 있습니다.

폴란드는 미래를 낙관적으로 봅니다. EU 회원국 가입 문제는 물론 내부 경제와 사회 발전의 전망도 밝다고 생각합니다. 저희는 폴란드, 유럽, 나아가 전 세계가 올바른 방향으로 큰 걸음을 내디뎠다고 믿습니다. 평화와 자유와 공평한 협력을 향해.

폴란드는 또한 희망과 기대를 안고 한 폴 관계의 경험과 미래를 내다보고 있습니다.

한국과 폴란드는 지리적으로 수천 킬로미터나 떨어져 있지만 역사적으로, 또 현재에도 많은 유사성이 있습니다. 풍부한 문화와 전통, 지난 세기의 쓰라린 전쟁 경험, 최근의 광범위한 정치 경제적 변화, 성공적인 민주화 과정, 약진하는 경제발전 등을 그 예로 들 수 있겠습니다.

폴란드에서 한국은 훌륭한 아시아 국가들의 중요한 일원이자 동아시아의 현재와 미래의 모습을 만들어나가는 데 매우 중요한 나라로 인식되고 있다는 것은 논란의 여지가 없습니다.폴란드는 아시아와 유럽의 관계를 발전시키는 데 한국이 적극적이고 역동적인 역할을 하고있다는 점에 대해서 감사히 생각합니다. 많은 폴란드 사람들은 비단 현재 펼쳐지고 있는 월드컵이라는 프리즘을 통해서가 아니더라도 한국을 매우 중요한 경제 동반자로 인식하고 있습니다. 90년대 초 상황은 양국의 경제적 관계 발전을 조성했습니다. 1989년 수교 후 양국은 투자를 지원하고 보호하는 무역 협정과 이중 과세 방지 협정을 체결했습니다. 또 폴란드의 무역 적자에 대한 우려에도 불구하고 양국은 교역을 확대해왔습니다. 폴란드는 몇 년째 무역적자가 지속되고 있으며 2001년에는 적자가 거의 미화 5억 달러에 육박하였습니다. 한국 상품은 폴란드 시장에서 좋은 평판을 얻고 있습니다. 폴란드도 한국에 수출을 확대하고자 합니다. 특히 화학공업, 농산물 및 식품, 항공산업 분야의 수출 증대를 원하고 있습니다.

폴란드는 또한 더 많은 한국의 투자 유치를 희망합니다. 폴란드는 교차로라는 유리한 지리적 위치, 4천만의 소비자가 있는 큰 시장, 효율적이고 잘 훈련된 노동력, 외국 투자에 대한 긍정적인 태도, 임박한 EU 가입 등과 같은 많은 이점을 제공합니다.

한국측은 이미 폴란드 투자에 많은 경험을 쌓아왔습니다. 대우, 삼성, LG 그룹과 같은 한국기업의 진출이 이를 입증하고 있습니다. 저희는 바르사브와 루블린에서 대우의 투자 실패가 앞으로 두 나라의 협력 관계에 악영향을 미치지 않기를 바랍니다. 폴란드는 한국기업, 특히 전자, IT, 자동차 부문의 기업들의 폴란드 진출이 확대되기를 기대합니다.

신사 숙녀 여러분,

저와 한국의 인연은 여러 해를 거슬러 올라갑니다. 1988 서울 올림픽 때 폴란드 올림픽 위원회 회장으로 한국을 찾았고, 그리고 한 폴 의회 그룹 대표로 방문한 것을 포함하여 저는한국을 세차례 방문할 기회가 있었습니다. 또 바르샤바에서 많은 한국 관리들을 접대하기도 했습니다. 지난 이틀간 저는 한국 대통령과 국무총리와 매우 건설적인 회담을 가졌습니다.

이에 저는 양국의 상호 관계를 매우 낙관적으로 전망합니다. 양국 관계의 미래는 정치인들의 손에만 달려 있는 것이 아니라 바로 여러분 젊은이들의 손에 달려 있다는 사실만으로도저는 큰 희망을 가지게 됩니다. 많은 것이 여러분들에게 달려있습니다.

경청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여러분을 초청합니다. 폴란드로 오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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