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4년 7월 - 계명 People                                       지난 계명 People 보기



교육계의 거목 童山 신태식 박사 세상떠나...

- 19일 저녁 숙환으로 별세, 95세의 일기로 생을 마감


 신태식(申泰植) 계명대 명예총장이 19일 저녁 계명대 동산병원에서 숙환으로 별세했다.
향년 95세.


 신태식 박사는 지금의 계명대를 오늘에 있게 한 장본인이기도 하지만, 계성초등학교와 계성유치원을 설립하는 등 대구 교육계를 이끈 산 증인이다.
 일찍이 기독교에 귀의 한 고인은 미국 선교사와 인연을 맺고 어려서부터 신학문을 배웠다. 계성학교(지금의 계성중학교)와 평양의 숭실전문학교를 거쳐, 1939년 봄 일본 동북제국대학을 졸업하고 계성학교(지금의 계성중학교) 영어교사로 부임하면서 교육계에 첫발을 내딛였다. 1945년 8월 해방을 맞으며 일본 교육정책을 충실히 따랐던 전임 교장이 물러나고 신태식 박사가 교장을 맡게되었다.
 일제탄압속에 공산중학교로 바뀐 계성학교를 1948년 9월 교명을 다시 계성중학교로 환원하고 4년제를 6년제로 변경하여 계성학교를 새롭게 탄생시켰다.
 이후 신태식 교장은 계성초등학교와 계성유치원을 설립하여 종합적 교육체계를 완성했으며, 이러한 공로로 미국 엠포리아 대학으로부터 명예 교육학박사 학위를 , 캐롤 대학으로부터 명예 법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신태식 박사는 계명대학교를 탄생시킨 산파역을 맡았다.
 1954년 개교한 계명대학의 설립을 위한 기성회의 조직이나 재단설립, 이사 선임 등의 주도자이자 대표자는 미국인 선교사 안두화였으나, 한국인으로서 실질적인 행정은 당시 계성학교 교장이었던 신태식 교장이 맡았다.
 신태식 박사는 계성학교 교장과 계명기독대학 부학장을 겸임하다 1961년 11월 30일 계명기독대학 제 3대 학장으로 취임하게 된다.
 당시 신태식 박사의 학장 취임은 큰 의미가 있었는데, 외국인이 아닌 한국인이 학장이 되었다는 것과 목사가 아닌 교육자가 학장으로 취임했다는 사실이다.

 초창기 대부분이 대학들과 마찬가지로 계명대학도 전적으로 미국의 원조에 의지해야 했으므로 재정적 어려움을 겪을 수 밖에 없었다. 당시 신태식 학장은 이러한 재정적 어려움을 타계하기 위해 해외 모금운동을 벌이고 이를 위해 20여 차례나 미국 및 세계 각국을 나들었다.
 그 당시 자기의 돈이나 학교의 돈으로 외국을 간다는 것은 생각도 못할 상황에서 신태식 학장은 홀트 아동복지회의 입양 고아들을 수송하는 일을 맡아 무료로 비행기를 타게 되었다는 것이다.
 미국인 독지가들로부터 수십만불을 기부받아 기숙사, 도서관, 교수연구관, 대강당 등의 교육시설을 지었다.
 계명대학교의 각 건물에 이름이 붙은 것도 이러한 연유에서인데, 학교를 위해 거액을 기부한 사람이나 큰 공적을 남긴 이들을 영원히 기리기 위해 그 사람들의 이름을 각 건물에 붙이게 된 것이다.
 신태식 학장은 재임시절 단과대학이었던 계명대학을 종합대학으로 승격시키는 동시에 동산병원을 통합하는 등 계명대학교 역사의 대 전환점을 마련했다.  이와 함께 계명기독대학 병설 여자초급대학(현재 계명문화대학의 전신)을 설립하기도 했다.
 1978년 계명대가 종합대학으로 승격하면서 신일희 박사가 총장으로 취임하면서 학장직에서 물러나게 된다.
 그러나 학장직에서 물러난 이후 최근 까지도 신태식 박사는 계명대를 위해 헌신했다. 평소 친분이 있던 친구나 기업인들로부터 대학 발전기금을 모금한 것이다. 그 대표적인 예가 삼호방직의 정재호 박사의 110억 기증이다. 아무런 연고도 없는 정재호 박사는 오로지 신태식 박사를 믿고 계명대에 거액을 희사한 것인데, 이 돈은 계명대 성서캠퍼스 조성에 결정적 역할을 하게 되었다.


 신태식 박사는 일본 동북제국대학의 유학시절을 제외하고는 모든 생애를 기독교 교육기관에서 보냈으며, 1945년부터 1978년까지 30여 년 동안 오로지 한 길, 계성학교와 계명대학교를 위해 봉사했다.
 계명대 대명캠퍼스 정문 광장 옆의 청석 바위에는 “이런 바위산을 깍아 오늘을 마련했다.”는 글귀가 새겨져 있는데, 이는 신태식 학장이 황무지 돌산을 깍아 건물을 새우고 나무를 심고 잔디밭을 가꾸었다는 것을 여실히 보여주는 글귀다.
 신태식 박사의 아호(雅號)는 동산(童山)이다. 문자 그대로 해석하면 나무가 없고 헐벗은 민둥산을 의미한다. 계명대의 대명캠퍼스이 초창기 모습이 연상되기도 하지만, 스스로 겸손한 마음, 부모를 생각하는 마음에서 자신 스스로 호를 그렇게 지었다고 한다.

 신태식 박사는 1909년 1월 경북 청송 복동마을 이른바 ‘소대(松臺)’라고 불리는 푸른 솔밭마을에서 태어났다.
 신태식 박사는 계성중학교(1930. 3.졸업)와 숭실전문학교(1936. 3.졸업)를 거쳐, 일 동북제국대학 법문학부 영문학과를 졸업했다.(1939. 3.)
 이후 1953년 8월부터 이듬해 6월까지 미국 펜실베니아주 피츠버그 대학원에서 수학했으며, 1961년 6월 미국 켄사스주 엠포리아대학에서 명예교육학박사 학위, 위스칸신주 케롤대학에서 명예 법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1939년 4월부터 1961년 9월까지 계성학교에 몸담으며 영어교사와 교장을 지냈으며, 1952년 5월부터 1956년 10월까지 대구시 교육위원과 경상북도 교육위원을 역임했다.
 1958년 4월 계명대학 교수 및 부학장을 맡았으며, 1961년 11월부터 1978년 2월까지 계명대학장을 지냈다. 이후 지금까지 계명대 명예총장으로 지내왔다.
 고 신태식 박사는 이런 교육계에 헌신한 공로로 대한민국 국민훈장 모란장을 받았다.
 장례는 계명기독학원 · 계성학원 · 신명학원 합동장으로 치러지는데, 23일 오전 9시 계명대 아담스채플에서 발인예배를 갖는다.
 빈소는 계명대 대명캠퍼스 본관 대강당이며, 장지는 경북 청송군 안덕면 복동 선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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